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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심리학

가끔가다 끊기는 필름 아웃 그것은 무의식!

by ALL Tema 2022. 11. 29.

무의식 또는 '미의식'은 자신과 주위 환경에 자각이 없는 상태 즉,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두뇌의 활동이며 사고 과정, 기억, 동기 따위 없이 자동으로 발생하거나 작동할 수 있는 심리적, 정신적 작용이다.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무의식적 작용은 꿈이나 농담 따위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고 이해된다.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분석학이나 카를 융이 제창한 분석심리학에서 무의식은 “마음속의 의식이 아닌 영역”이다.

뇌신경과학 같은 비정 신분석학적 학문에서는 무의식적 활동이란 의식적 자각에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 정신적 활동을 가리키는 말로써 사용하며 이 경우 이를 '미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것 같은 별개의 영역으로서의 무의식 개념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따위의 이론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신경과학이나 인지심리학 등에서의 비의 식은 그러한 이론과는 달리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데이터에 기반하여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예컨대 인지과학 연구자들은 사람이 의식적 사고를 통해서 얻는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의식적 자각 바깥에서 자동적, 비의도적으로 획득할 수 있음을 밝혀냈으며 이러한 것의 주요한 예로 자동적 사고의 무의식적 작용이 언급된다.

한편 일부에서는 정신분석학적인 무의식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받기도 한다. 에리히 프롬은 정신분석학자이지만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무의식을 부정했으며, 모리스 메를로퐁티 같은 현상학자들은 무의식도 "수동적 의식"으로서 결국 의식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의 존재
무의식적이다 고는 무엇인가 말하는 것은, 그 전제에, 의식이란 무엇이냐고 하는 것의 이해가 없으면 안 된다. 「의식」이란, 인간 일반적으로 두고, 「내가 의식하고 있으면, 의식하고 있을 때, 자명 적으로 존재 이해되는 무엇인가」이라고 된다. 

이처럼 의식은, 주관적으로 파악되어 왔지만, 근대에 성립한 과학이 그 연구 대상으로 하려면 규정으로서는 적절하지 않고, 애매하고, 한편 정량적 파악도 곤란했다. 그 때문에 마음의 학문인 심리학에서도, 마음이나 영혼, 혹은 의식은 과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하고, 자극과 반응 그리고 심리학을 쌓아 올리려고 한 행동주의 심리학 등이 출현했다. 현재에도 마음의 개념과 같이, 의식의 개념도 주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존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리학파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 대상으로 해 객관적 파악이 곤란이라고 해도, 「의식을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의식의 존재는 자명하다」라고 하는 명제도 또한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과학적 객관적으로는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해라, 마음의 개념과 같이 의식의 개념도 존재하고 있으면 최초부터 전제 하는 심리학도 많다. 적어도 일반인은 의식이 없다고는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그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지 않아도, 의식은 자명의 것으로 해 다루어지거나 하는 것이 현상이다. 물론 의식도 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파도 있어, 확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상이다.

   
심층 의식
 
무의식은, 「의식이 없는 상태」와「마음속의 의식이 아닌 혹 후 영역」의 두 개의 주요한 의미가 있다. 

한편, 약한 의미로 「의식이 없다」는 경우는, 「눈치채지 못한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처음은 책의 문장의 내용과 음악의 양쪽 모두가 의식된다. 그러나, 독서에 집중하고 있고, 문득 무엇인가로 중단되면, 「음악이 갑자기 들려 온다」라는 일이 있다. 음악은 쭉 울리고 있었지만,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의 진행에 「눈치채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매우 다수의 감각 자극이나 의미의 자극을 받아 그 대부분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의식하고 있지 않다·눈치채지 못하다」 감각 자극이나 의미의 자극으로, 대뇌는 감수해, 기억에 새기고 있는 것은, 더 방대한 양이 존재한다. 기억에 관한 심리학의 실험으로부터 그것을 말할 수 있다.

의식과 기억
인간은 여러 가지 것을 의식하지만, 목전, 혹은 「지금 여기의 감각적・의미적 자극의 패턴」 이외로, 「의식하는 것」은, 광의의 「기억」이다. 기억의 재생은, 어느 말이나 지식 등이 재현되기도 하지만, 또 내적인 이미지의 형태로, 과거의 정경(시각적・청각적등 )이 생각나기도 한다.

기억은 일상적으로 재현되고 있어 복잡한 순서가 있어야 하는 작업에서도, 그 하나하나의 순서를 「의식하지 않는다」로,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복잡한 한자를 쓰는 경우, 어느 선을 긋고, 다음은 어느 선을 어디에 어떻게 추가 기재라고 등과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고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참고: 수속 기억).

「기억을 상기하고 있다고 하는 의식」 없이, 매우 많은 일이, 이 현재에 상기되어 이미지나 감정이나 의미로 구성되는 「의식의 흐름」이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분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려고,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인데, 아무래도 생각해 낼 수 없는 케이스가 존재해, 이때, 의식의 매끄러운 흐름은 막혀, 기억을 재생하려고 하는 노력이 의식에 오른다.

생각해 내려고, 노력 등이 필요한 기억은, 「매끄럽게 흘러가는 의식의 영역」에는, 상기가 성공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그럼, 그러한 기억은 어디에 있었는가. 물론, 대뇌의 신경세포 구조 관계의 패턴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가, 주관적인 경험으로서는, 그러한 기억은, 「현재의 의식 영역」의 밖, 「전의식」이라는 영역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무의식의 의미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의식 속에서는, 여러 가지 「의식의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 이 현재의 의식의 대상은, 눈앞하고 있는 감각・의미・감정등의 패턴이지만, 또, 정체가 없는 자연스러운, 「눈치채는 일 없이」 상기되고 있는 기억의 내용이, 그 대상이다.

「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각성 의식이 있다」, 「무언가에 눈치채고 있다」라고 하는 통상적인 의미 이외에, 주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의 총체」가 존재하고 있는 「영역」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를 「의식하고 있다」, 또는, 무언가에 「눈치챈다」고는, 대상이, 「의식의 영역」에 들어 오는 것, 의식에 올라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일생 속에서, 방대한 양의 기억을 대뇌의 생리학적인 기구에 새긴다. 그 안에서, 재차, 기억으로서 의식에 재생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재생되지 말고, 대뇌의 기억 저장 기구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기억은, 개개 뿔뿔이 흩어지게 고도의 집단과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상이 기억의 상기를 촉진하는 것부터 분명한 것 같게, 감각적 혹은 의미적・감정적으로, 연관 구조나 그룹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억에 새겨지고 있는 한은, 어떠한 기억이어도, 재생, 상기될 가능성은 완전한 제로는 아니게 된다.

사람의 일생에 있고, 재차, 상기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고 해도, 사실상, 일평생에 있어 두 번 다시 「의식의 영역」에 올라 오지 않는, 방대한 양의 기억이 존재한다. 주관적으로 바라볼 때, 일평생으로, 두 번 다시 상기되지 않는 이러한 기억은, 「의식의 밖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의식의 밖」이라고 해도, 과학적으로는, 대뇌의 신경세포 네트워크의 어디엔가 새겨지고 있는 것이며, 「의식의 밖」이란, 주관에 있어서, 현상적으로 「의식이 아닌 영역」에, 방대한 기억이 존재한다고 하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식이 아닌 영역」이, 무의식의 제2 의미가 된다.


심층심리학 이론과 무의식
프로이트의 억압하는 무의식
심층심리학의 이론 대표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 분석학에선, 무의식중에 억압의 구조를 가정해, 이러한 구조에 대해, 신경증이 발병한다고 하여, 그 치료법의 이론을 전개했다. 

또, 정신 분석의 이론 응용으로서 개인의 「양심」, 사회의 「도덕」의 기원을, 무의식의 억압 구조의 문화적인 작용으로서 설명했다. 예를 들면 버릇이나 일견 우발적으로 보이는 실언에 대해, 본인은 후에 설명을 시도(합리화)하지만, 객관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인 거기에 개인적인 억압 구조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융의 언어연상법에도 계승해지고 있다.


광의의 무의식
「의식이 아닌 영역」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하고 있다. 최면상태로의 의식 상태나, 종교적인 의식이나 약물 복용으로 생기는 「변성의식」 등도, 통상의 의식이 아닌 상태이다.

또, 이러한 광의의 변성의식 등의 그 밖에, 잠재의식 등의 「의식이 아닌 상태·영역」을 생각되어 왔다. 「의식이 아닌 영역」의 존재는 확실하다고 해도, 주관적으로 파악되는 그러한 영역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이나 설명을 실시할 수 있는가 하면 곤란하다.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의 「무의식」은, 그들이 이론적으로 상정한 구조의 존재는, 결과적으로 실증되지 않는 것이 판명되었지만, 20세기 전반에 태어난, 이러한 「무의식의 개념」은,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며, 사상이나 예술에 현재도 아직 영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한정에 무의식을 말하는 것은, 개개인의 주관적인 파악이 되어, 또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무의식도 그렇지만, 너무나 가설적 요소의 큰 무의식은, 실증성이 더욱더 곤란하고, 의문이 된다. 잠재의식도, 무엇을 의미하는 개념인가, 불확정 요소가 너무 많다. 주관적 요소나 해석이 너무나 큰 그러한 말의 용법이나 개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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